결제까지는 쉬웠는데

인강사이트를 고를 때 우리가 보는 건 대개 강사 이력, 강의 수, 가격, 수강 기간입니다. 전부 강의 쪽 조건이에요. 정작 내가 강의를 끄고 나서 무엇을 하게 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어요?
- I'm from Seoul. 서울에서 왔어요.
첫 강의는 보통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죠. 다 아는 말이라 편하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끝까지 이어져요. 강의는 계속 편한데 입은 그대로인 상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듣는 동안은 다 알아들어요

강의를 보는 30분은 편안합니다. 설명이 좋으니까요. 문제는 영상을 끄고 난 다음입니다.
- I've been to Japan twice. 일본에 두 번 가 봤어요.
- Have you been there before? 거기 가 본 적 있어요?
강의에서 이 두 문장을 이해하는 데는 3초면 됩니다. 그런데 영상을 끄고 「일본에 두 번 가 봤어요」를 영어로 말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멈춰요. 알아듣는 힘과 꺼내는 힘은 다른 근육입니다. 강의는 앞쪽 근육만 길러 줘요.
강의 예문이 내 문장이 되지 않아요

강의 예문은 강사의 하루로 만든 문장이에요. 내 입에서 나올 문장은 내 하루로 갈아 끼워야 붙습니다.
- I'm going to the gym after work. 퇴근하고 헬스장에 가요.
- I'm going to the library after class.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가요.
- I'm going to the market after lunch. 점심 먹고 시장에 가요.
틀은 그대로 두고 뒤쪽 단어만 바꾸는 겁니다. 한 문장에 세 개씩만 만들어도 그 틀은 내 것이 돼요. 이 작업은 어떤 인강사이트도 대신 해 주지 않습니다.
완강률이 실력은 아니에요

수강률 100%는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그건 영상을 끝까지 재생했다는 기록이지, 내가 말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에요.
- Could you speak more slowly? 조금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 I didn't catch that. 못 알아들었어요.
- Sorry, what was that? 네, 뭐라고 하셨어요?
이 세 문장을 배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배웠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 앞에서 나오는 건 한 개예요. 배운 것과 나오는 것 사이의 거리, 그게 실력입니다.
그래도 강의가 이기는 자리가 있어요

여기까지만 읽으면 강의가 쓸모없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규칙을 설명해 주는 일에서는 강의를 대신할 방법이 거의 없어요.
- She works at a bank. 그녀는 은행에서 일해요. — 3인칭에 s가 붙는 자리
- I have to go now. 이제 가 봐야 해요. — must와 갈리는 자리
- I used to live in Busan. 예전엔 부산에 살았어요. — 지금은 아니라는 뜻
이런 건 원어민과 20분 이야기한다고 알게 되지 않아요. 오히려 원어민은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칙과 원리는 강의가 맡고, 꺼내 쓰는 훈련은 강의 밖이 맡는 겁니다. 둘 중 하나만 하면 반쪽이에요.
인강사이트를 살리는 10분

결제한 강의를 살리는 방법은 강의를 더 많이 듣는 게 아니라, 강의 뒤에 10분을 붙이는 겁니다.
- 강의에서 쓸 만한 문장 세 개만 고릅니다
- 뒤쪽 단어를 내 하루로 바꿔 세 문장씩 만듭니다 — I work in marketing. 저는 마케팅 쪽에서 일해요.
- 영상을 끄고 소리 내어 말해 봅니다 — What do you do for a living? 무슨 일 하세요?
오늘 들은 강의로 딱 세 문장만 만들어 보세요. 인강사이트의 값은 강의 개수가 아니라, 강의가 끝난 뒤 10분에서 갈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