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재를 고를 때 진짜 기준

서점에서 영어교재를 고를 때 대부분 목차와 두께를 봅니다. 그런데 끝까지 본 책과 책장에 꽂아 둔 책을 갈라놓는 건 내용이 아니라 분량인 경우가 많아요.
- I'll take it. 그걸로 할게요.
- It depends. 상황에 따라 달라요.
이렇게 오늘 당장 입에 올릴 수 있는 문장이 몇 쪽마다 나오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하루에 감당할 분량이 눈에 보이는지, 그것부터 확인하세요. 한 단원이 열 쪽이 넘어가면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서점에서 아무 쪽이나 펴서 오늘 저녁에 이만큼 할 수 있겠는지 가늠해 보면 됩니다.
문법 교재는 설명이 한국어여도 괜찮아요

문법책은 영어로 된 원서가 낫다는 말이 있지만 성인 학습자에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설명을 해독하는 데 힘을 다 쓰면 정작 예문을 볼 힘이 남지 않아요.
- I used to live in Seoul. 예전에 서울에 살았어요.
- I'm used to it now. 이젠 익숙해요.
- She has worked here for years. 그녀는 여기서 몇 년째 일해요.
설명은 한국어로 읽되 예문은 반드시 소리 내어 보는 쪽이 낫습니다. 규칙 설명보다 예문 수가 많은 책을 고르세요.
회화 교재는 답이 짧은가로 갈립니다

회화책은 문장 하나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주고받는 흐름이 있어야 실제로 쓸 수 있습니다.
- What time does it close? 몇 시에 닫아요?
- Let me get back to you. 다시 연락드릴게요.
- Not that I know of. 제가 알기로는 아니에요.
초급 회화책일수록 길고 완전한 문장만 싣습니다. 그런데 실제 대화는 대부분 짧아요. 이렇게 짧게 끊어지는 답이 실려 있는지 꼭 넘겨 보세요. 상황별 목차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공항과 식당이 앞쪽에 몰려 있는 책은 여행용, 회의와 메일이 두툼한 책은 회사용이에요. 내가 실제로 설 자리와 목차가 겹치는지 보면 됩니다.
단어 교재는 나열만 된 책을 피하세요

단어와 뜻만 두 줄로 붙어 있는 책은 외우기는 쉬워도 쓰지는 못합니다. 그 단어가 어떤 문장 안에 사는지 보여 주는 책이어야 해요.
- How long does it take? 얼마나 걸려요?
- Can I get a receipt? 영수증 받을 수 있을까요?
같은 단어가 다른 문장에서 다시 나오는지도 보세요. 한 번 나오고 끝나는 단어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음원을 함께 주는지도 확인하세요. 눈으로만 외운 단어는 귀에서 들리지 않아요.
읽기 교재는 한 쪽에 모르는 단어 다섯 개

읽기 교재는 흔히 한 쪽에 모르는 단어가 다섯 개를 넘으면 어렵다고 봅니다. 사전을 너무 자주 들면 이야기가 자꾸 끊기기 때문이에요.
- I'm just looking. 그냥 둘러보는 중이에요.
- I'd rather stay home. 차라리 집에 있을래요.
다만 이 기준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는 훈련용이라면 모르는 단어가 한두 개여야 하고, 반대로 한 지문을 며칠에 걸쳐 파고드는 정독용이라면 열 개가 넘어도 괜찮아요. 같은 책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적정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영어교재 한 권을 끝내는 법

좋은 책을 고르는 것보다 어려운 게 한 권을 끝내는 일입니다.
하루에 볼 쪽수를 먼저 정하고, 그 분량으로 끝나는 날짜를 책 앞장에 적어 둔다.
그리고 그날 배운 문장 하나를 소리 내어 말해 보세요. Let me get back to you. 한 문장이라도 입에서 나오면 그 쪽은 끝난 겁니다. 영어교재는 다 읽은 쪽수가 아니라 입에 남은 문장으로 값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