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아는데 입에서 안 나와요

영어단어어플을 한 달쯤 돌리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화면에 dish 가 뜨면 '접시'가 바로 떠오르는데, 정작 설거지 이야기를 하려니 아무 말도 안 나와요.
- I'll do the dishes.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 Let's take a break. 좀 쉬었다 해요.
보고 알아보는 힘과 빈칸에서 꺼내는 힘은 다른 근육입니다. 어플은 앞쪽을 아주 잘 훈련시키고, 뒤쪽은 거의 건드리지 않아요. 그래서 단어 수는 늘어나는데 말은 그대로인 일이 생깁니다.
영어단어어플이 잘하는 일

먼저 공정하게 짚고 갑시다. 어플에는 종이 단어장이 못 하는 일이 분명히 있어요.
- 잊어버릴 때쯤 다시 꺼내 보여 주는 간격 반복
- 단어마다 소리가 붙어 있어 눈으로만 외우지 않게 해 주는 것
- 내가 약한 단어만 골라 다시 물어보는 것
이 셋은 사람이 손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어플을 지우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어플이 어디까지 해 주는지 알고 나머지를 채우자는 얘기입니다.
정답 버튼이 뜻하는 것

어플에서 정답을 눌렀다는 건 '알아봤다'는 뜻입니다.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 둘 사이가 생각보다 멉니다.
- I take a shower every morning. 저는 아침마다 샤워해요.
- It's getting dark. 어두워지고 있어요.
take 와 get 은 어플에서 백 번쯤 만난 단어일 겁니다. 그런데 위 두 문장이 입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 단어를 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죠. 단어는 뜻이 아니라 자리와 함께 기억됩니다.
뜻 하나로는 안 되는 단어들

어플 뒷면에는 대개 뜻이 하나만 적힙니다. 그런데 정작 자주 쓰이는 단어일수록 얼굴이 여럿이에요.
- Get in the car. 차에 타세요. (타다)
- I got over my cold. 감기가 나았어요. (이겨 내다)
- He runs a restaurant. 그는 식당을 해요. (운영하다)
- I caught a cold. 감기에 걸렸어요. (걸리다)
run 을 '달리다'로만 외운 사람은 He runs a restaurant. 를 듣고 잠깐 멈칫합니다. 뜻을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하나 더 갖는 편이 빠릅니다.
짝으로 붙어 다니는 말들

영어에는 이유 없이 함께 다니는 짝이 있습니다. 이걸 연어라고 불러요. 규칙이 아니라 습관이라 사전의 뜻만 봐서는 안 잡힙니다.
- I'll do the dishes. 설거지는 do 와 짝
- We need to make a decision. 결정은 make 와 짝
- We had heavy rain last night. 어젯밤에 비가 많이 왔어요.
- I missed the bus this morning. 아침에 버스를 놓쳤어요.
비가 많이 온 것을 strong rain 이라고 하지 않고 heavy rain 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커피가 진할 때는 heavy coffee 가 아니라 strong coffee 예요. 둘 다 문법은 멀쩡하지만 원어민은 한쪽만 씁니다. 이런 짝은 뜻으로 외울 수 없고 문장으로만 들어와요.
영어단어어플을 제대로 쓰는 법

어플을 끄자는 게 아니라, 어플이 끝난 자리에서 한 걸음을 더 가자는 겁니다.
오늘 어플에서 만난 단어 세 개로, 내 이야기 문장을 하나씩 만들어 소리 내 본다.
어제 있었던 일로 만들면 더 좋아요. I missed the bus this morning. 아침에 버스를 놓쳤어요. I caught a cold. 감기에 걸렸어요. 이렇게 내 하루가 들어간 문장은 다음 날에도 남아 있습니다. 영어단어어플의 정답률보다, 내가 만든 문장 개수를 세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