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만 보면 다 비슷해 보여요

서점에서 영어회화교재를 펴면 목차가 거의 같습니다. 인사, 자기소개, 식당, 쇼핑, 공항. 그래서 목차로는 고를 수가 없어요.
고르는 자리는 목차가 아니라 아무 쪽이나 펴 본 안쪽입니다. 볼 것은 셋이에요. 대화가 한 번 더 이어지는지, 음원이 실제 속도인지, 내가 쓸 상황이 들어 있는지.
첫째 — 대화가 한 번 더 이어지나

많은 교재가 묻고 답하는 두 줄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실제 대화가 어려운 건 세 번째 줄부터예요.
- A How was your day? 오늘 어땠어요?
- B Pretty good. I had my first driving lesson. 괜찮았어요. 첫 운전 연수 받았어요.
- A How did that go? 어땠어요?
세 번째 줄이 있는 교재를 고르세요. 이 줄이 없으면 아무리 외워도 대화가 두 마디에서 끊깁니다. 답에 이유나 사건이 한 줄 붙어 있는지도 같이 보시면 돼요.
답이 한 단어로 끝나는 교재도 조심하세요. Yes, I did. 로 끝나는 대화는 실제로는 잘 없습니다. 사람은 대개 한 줄을 덧붙여요.
둘째 — 음원이 실제 속도인가

음원을 30초만 들어 보면 알 수 있어요. 또박또박 읽어 주는 음원은 듣기에는 편한데, 실제 대화에서 쓸 문장을 안 가르쳐 줍니다.
- Sorry, I didn't catch that. 죄송해요, 못 알아들었어요.
- Could you say that again?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 I'm not following. 잘 못 따라가고 있어요.
실제 속도의 음원으로 공부하면 이 세 문장을 자연스럽게 쓰게 됩니다. 못 알아듣는 상황을 교재 안에서 미리 겪어 두는 셈이에요. 요즘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음원도 많으니, 처음에는 느리게 듣다가 익숙해지면 원래 속도로 올리시면 됩니다.
셋째 — 내가 쓸 상황이 들어 있나

공항 편은 두툼한데 정작 내가 매일 있는 자리는 비어 있는 교재가 많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문장이 있는지 보세요.
- What do you do? 무슨 일 하세요?
- I work at a hospital. 병원에서 일해요.
- Can I get back to you on that? 그건 나중에 답드려도 될까요?
- Let's meet at seven. 일곱 시에 만나요.
내 일과에 없는 상황은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입에 안 붙어요. 목차에서 내가 이번 달에 쓸 자리가 몇 개인지 세어 보시면 됩니다.
원어민 저자라고 늘 나은 건 아니에요

여기는 정직하게 짚겠습니다. 원어민이 쓴 교재는 문장이 자연스럽지만, 한국 사람이 어디서 틀리는지는 잘 모릅니다. 우리가 헷갈리는 자리를 짚는 건 한국인 저자 쪽이 나은 경우가 많아요.
오래된 교재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How do you do? 처음 뵙겠습니다. 는 지금 일상에서는 거의 듣기 어려워요. 보통은 Nice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 를 씁니다. 다만 영국의 격식 있는 소개 자리에는 아직 남아 있어서, 아예 틀린 표현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오래된 문장이 많다면 개정 연도를 확인해 보세요.
영어회화교재 한 권을 끝까지 쓰는 법

고르는 것보다 어려운 게 끝까지 가는 일이에요. 여러 권을 사 두는 것보다 한 권을 세 번 도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1회는 눈으로, 2회는 소리 내어, 3회는 이름과 시간을 내 것으로 바꿔서
오늘은 갖고 계신 영어회화교재를 아무 쪽이나 펴서, 그 쪽의 대화를 소리 내어 두 번 읽어 보세요. 세 번째 줄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해 보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