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만 남으면 문이 닫힙니다

거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절만 남는 것이 문제예요. 영어에서 아래 문장은 문법이 완벽한데도 상대에게 남기는 것이 없습니다.
- No, I can't. 아니요, 안 돼요.
왜 안 되는지 상대는 모르고,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다시 물어봐도 되는지까지 알 수 없어요. 거절을 부드럽게 만드는 건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 빠진 칸을 채우는 일입니다.
완곡의 뼈대는 세 칸이에요

영어에서 관계를 남기는 거절은 대개 이 순서로 갑니다. 고마움을 먼저, 사정을 그다음, 대안을 마지막에요.
- Thanks for thinking of me, 저를 떠올려 주셔서 고마워요,
- but I'm tied up this week. 그런데 이번 주는 손이 묶여 있어요.
- Can we look at next week? 다음 주로 볼 수 있을까요?
세 칸 중 하나만 빠져도 온도가 확 내려갑니다. 특히 마지막 칸이 빠지면 아무리 정중해도 끝났다는 신호로 읽혀요. 정말 대안이 없을 때는 Not this time, but please keep me in mind. 이번엔 어렵지만 다음에도 불러 주세요. 처럼 문만 열어 둡니다.
일을 거절할 때 쓰는 말

업무 요청은 거절하는 이유가 대개 능력이 아니라 용량입니다. 그 점을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 I'd love to, but I can't. 하고 싶은데 어렵겠어요.
- My plate is full right now. 지금은 일이 꽉 차 있어요.
- I have to pass on this one. 이번 건은 못 맡겠어요.
- That won't work for me. 그 조건은 어렵겠습니다.
넷 중 마지막 문장은 조건이나 일정에 대한 거절이라 사람에 대한 거절로 들리지 않아요. 조건만 바꾸면 된다는 뜻이 함께 전해집니다.
초대를 거절할 때는 온도가 달라요

모임이나 식사 초대는 업무와 다릅니다. 이유를 자세히 대지 않아도 되고, 대신 아쉬움을 담는 쪽이 자연스러워요.
- Thanks for the invite. 불러 주셔서 고마워요.
- I can't make it. 못 갈 것 같아요.
- Maybe next time. 다음번에 꼭 갈게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 자리라서 I have something that day. 그날 일이 있어요.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세히 설명할수록 오히려 변명처럼 들려요.
너무 돌려 말하면 예스로 읽힙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짚을 게 있어요. 완곡하게만 가면 거절이 아예 전달되지 않습니다.
- I'll think about it. 생각해 볼게요.
한국어에서 이 말은 대개 부드러운 거절이지만, 영어에서는 정말로 검토 중이라는 뜻으로 도착합니다. 상대는 며칠 뒤에 다시 물어봐요. 영국식 표현에서는 한 겹이 더 있습니다. That's an interesting idea. 흥미로운 생각이네요. 가 사실상 거절인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미국 쪽 업무 대화는 더 직설적이라,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완곡함에는 기한을 붙입니다. I'll get back to you by Friday. 금요일까지 답 드릴게요. 처럼요. 기한이 있으면 부드럽되 흐려지지 않아요.
거절 문장은 미리 만들어 둡니다

거절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그 순간에 문장을 만들 시간이 없어서예요. 순발력이 아니라 준비물의 문제입니다.
내 상황에 맞는 거절 문장 하나를 오늘 만들어 저장해 둔다.
가장 쓸 일이 많은 건 이 문장일 거예요. I can't take that on right now. 지금은 그걸 맡기 어려워요. 뒤에 대안 한 줄만 붙이면 관계는 그대로 남습니다.



